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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원식 소개

작곡가 맹원식의 음악과 삶

 

 

 1960년대와 70년대에 작편곡자로서 대중적으로 명성을 떨친 음악인들을 사람들은 길옥윤, 이봉조, 박춘석 정도로 기억한다. 물론 혜은이, 현미, 이미자로 이어지는 그들의 사단은 시대를 풍미하며 우리 민중의 가슴속에 자리잡았다. 하지만 우리 대중음악사에는 수많은 작편곡자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K-POP이 탄생되었으며 그들의 숨은 노력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맹원식은 우리가 기억해야 할 또 한 명의 작편곡자다. 하춘화, 이미자, 이주일의 리사이틀를 비롯하여 30여장의 음반을 발표하였고, 워커힐의 전속악단장을 역임하면서 우리나라를 방문한 외국사절들과 음악인들에게 대한민국 음악의 높은 수준을 보여주며 평생을 작편곡에 매달렸던그를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1935년. 맹원식은 부친의사업상 중국 만주(滿洲)로 이전하여 신경(新京)에서 태어났다. 이후 함경북도 청평으로 옮겼다가 남하하여 서울 동작구 대방동에 위치한 성남고등보통학교를 다녔고. 그 시기에 유행하던 브라스밴드를 따라다니며 음악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6.25가 발발하자 교장이던 김석원이 의용군에 지원하라는 권유로 육군 보병 제1사단 군악대에 입대하게 된다. 그는 당시 어렵게 군악대에 들어갔지만 색소폰 실력이 모자라 상당히 고생을 했다고한다. 때문에 연주보다는 연락병을 하기 일쑤였고 모자란 실력을 채우기 위해 제대 후 이교숙을 찾아가게된다. 그때가 1961년.이교숙은 해군군악장교로 1955년부터 1957년 2년동안 미해군 군악학교에 유학을 다녀와 국내에 하프연주법과 재즈빅밴드 편곡법을 가르치기 시작했는데 그에게 배운연주인들이 신중현(기타), 이인성(기타), 김희갑(기타, 작곡가), 정성조(색소폰) 등이었으며 맹원식 또한 그의 제자가 되어 대중음악계에 실력자로서 인정받기 시작한다. 특히 그는 이교숙 사사 이후 여러 차례 경연대회에서 수상하게 되는데 1963년문화공보부 주최 제2회 전국신인예술상 경연대회, 연예부분작곡특상문화공보부장관상을 시작으로 1969년과 1970년에는 동양방송, 중앙일보가 주최하는 전국 경음악경연대회에서 2회 연속으로 편곡부 문최우수상을 수상하였다.


 경연대회에서 실력은 인정받은 그는 1965년 KBS TV 전임편곡자로 활동하면서 본격적으로 음악계에서 활동하였다. 특히 당시 방송프로그램들은 대부분 악단연주를 배경으로 쇼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맹원식의 편곡은 빛을 발했다. 그는 결국 1965년부터 1984년까지 미군과 외국인들이 주로 묵었던 워커힐호텔 극장의 전속안단장으로 재직하면서 명성을 떨쳤다. 대규모의 빅밴드가연주할 수 있도록 편곡하고 악보를 만들 수 있는 작편곡자는 우리나라에 많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워커힐호텔 활동을 하는 한편 유명가수들 리싸이틀의 편곡과 지휘자로 활약하였는데 1974년부터 1978년까지 5회 연속 하춘화 리싸이틀을 맡았으며 서영춘, 이미자, 혜은이, 희자매, 이주일 등 70년대에그의 손을 거친 공연들과 악보들은 가요계 발전에 상당한 역할을 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작편곡자로서 다수의 앨범을 발표하고 참여하기도 하였는데 1970년 영화배우 장동휘의 연기생활 30주년 기념작품이면서 맹원식의 신세기레코드사 전속기념작품인 ‘소공동 노신사’는 그의 주요작으로창작곡 <이슬비>를 비롯하여 <퇴계로의 밤은 짙어>, <초심>, <길잃은 철새> 등 그의 창작곡을 들을 수 있는 음반이다. 또한 1973년에 발매된 전집 ‘잊을 수 없는 멜로디’중 2, 11,12편을 담당한 맹원식은 우리 가요, 가곡, 민요를빅밴드로 형식으로 편곡하여 지휘한 곡들을 발표하였는데 노래들은 한국 빅밴드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작품들로 합주음악의 교과서로 불릴 수 있는 노래들로 완성되었다. 마지막으로 이번에 재발매로 소개되는 1990년에발매된 ‘성불사의 밤’ 음반은 맹원식 음악인생의 결정체로서그의 중요 작품에 속한다.


 

 

 이후 맹원식은 1990년대부터 콰테스 재즈오케스트라, 롯데월드 마칭밴드의 악단장으로 일하면서 후학양성에도 힘을 기울여서 이충재(작곡), 이한진(트럼본) 등이그의 제자로서 활약하고 있다. 특히 변변한 화성학책 한 권 없던 시절 그는 1935년생으로 일본 색소폰연주자이며 버클리음악대학을 졸업한 아타나베 사다오의 재즈스터디 메소드(Jazz Study Method)를 번역, 국내에 소개하여 한국 재즈화성학발전에 크게 기여한 공로가 크다.


이제는 원로음악인으로서 한국저작권협회에서 재즈화성학을 가르치며 음악인로서의 삶을 값지게 이어나가고 있는 맹원식. 그 동안 크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새롭게 재조명되고 기억될 필요가 있는 음악인으로 그의 작품들은 우리 곁에 늘 자리하고 있었다.